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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애절양(哀絶陽) — 절망의 땅에서 울려 퍼진 유배의 시

by 지방소식 2025. 5. 19.

정약용의 『애절양』은 조선 후기 민중 착취의 현실과 군정 제도의 잔혹함을 고발한 강력한 사회시로, 오늘날에도 울림을 주는 문학적 고발문이다.

정약용(丁若鏞)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정치 개혁가, 문인이자 민중의 고통을 기록한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의 시 『애절양(哀絶陽)』은 단순한 유배 시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 부패한 군정 제도의 폭력성과 불공정한 사회 구조가 백성의 삶을 어떻게 절망으로 내몰았는가를 극적으로 묘사한 시이며, 한 여인의 절규를 통해 지배 권력의 모순을 날카롭게 고발합니다.

 

 

애절양(哀絶陽)이란 무엇인가?

‘애절양’이라는 제목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양(陽)을 끊은 것을 슬퍼함”입니다. 여기서 ‘절양’은 남성 생식기를 자른다는 뜻으로, 생명의 상징인 ‘양기(陽氣)’를 단절시킨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 시는 남편이 부당한 군역(軍役)을 면제받기 위해 스스로 거세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 이를 목격한 부인의 절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약용의 초상화
다산 정약용

시의 원문과 해석

정약용의 『애절양』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蘆田少婦哭聲長 갈밭 마을 젊은 아낙 긴 울음 터뜨리고
哭向縣門號穹蒼 고을 관청 앞에서 하늘 향해 통곡하네
夫征不復尙可有 남편이 전쟁 나가 돌아오지 않는 건 있어도
自古未聞男絶陽 남자가 거세됐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네
舅喪已縞兒未澡 시아버지 삼년상 끝났고 아기는 아직 목욕도 못 했는데
三代名簽在軍保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삼대가 군포 명단에 올랐네
薄言往愬虎守閽 억울하다고 말하러 갔지만 관리는 맹수 같고
里正咆哮牛去早 이정은 으르렁대며 외양간 소를 먼저 끌고 갔네
磨刀入房血滿席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가 방바닥에 피만 가득
自恨生兒遭窘厄 “아이 낳은 죄인가!”라며 울부짖네
蠶室淫刑豈有辜 잠실에서의 거세 형벌도 억울한데
閩囝去勢良亦慽 중국의 환관도 안타까운 사연인데
生生之理天所予 삶을 이어가는 건 하늘이 내린 자연의 도리
乾道成男坤道女 하늘은 남자, 땅은 여자로 정했거늘
騸馬豶豕猶云悲 거세된 말이나 돼지도 슬퍼하거늘
況乃生民思繼序 하물며 백성이 자식을 잇지 못하는 고통은 어떠하랴
豪家終歲奏管絃 부자들은 일 년 내내 풍악 울리고 즐기는데
粒米寸帛無所損 한 톨 쌀, 한 치 천도 바치지 않네
均吾赤子何厚薄 모두 같은 백성인데 어찌 이리 불공평한가
客窓重誦鳲鳩篇 객창에 홀로 앉아 시구편을 다시 읊노라

 

 

사회 구조의 폭력성과 민중의 절망

정약용은 이 시를 통해 군포 제도의 불합리함사회 구조의 계급 불평등을 고발합니다. 당시 양반은 군역을 면제받았고, 부담은 고스란히 하층 민중에게 전가되었습니다. 특히 군역 면탈을 위해 자신을 거세하는 극단적 선택은 당시 민중의 절망과 사회의 야만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군포 제도의 잔혹함과 절망의 유산

‘삼대명첨재군보’(三代名簽在軍保)라는 구절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까지 삼대가 모두 군포를 내야 했던 당시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드러냅니다. 이 시는 단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당대 조선 백성들이 체험한 제도적 폭력의 집합체입니다. 정약용은 이러한 참상을 단지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늘의 이치에 반한 사회의 비정상성을 규탄합니다.

 

 

정약용은 누구를 사랑했는가?

정약용은 이 시에서 조선 후기 지배 계급의 위선과 부패를 비판하면서, 고통받는 백성들의 편에 섰습니다. 그가 사랑한 것은 조선 왕조가 아니라 조선의 민중이었습니다. 그는 감성적 동정심이 아닌, 구체적 현실과 제도 비판에 기반한 개혁 사상으로 민중을 대변했습니다.

오늘날의 의미와 현대적 울림

『애절양』은 단지 유배자의 탄식이 아닌, 민중이 제 몸을 훼손해야만 생존을 선택할 수 있던 시스템에 대한 절규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이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역사적 의미를 넘어서, 국가와 권력이 개인의 몸과 삶을 어떻게 지배해왔는가를 묻는 본질적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맺음말

정약용의 『애절양』은 민중의 절망, 제도의 모순, 그리고 인간의 근본적 존엄성에 대해 고발한 작품입니다. 유배지에서 씌어진 이 시는 당대 조선 지배 질서에 대한 냉철한 성찰이며, 오늘날에도 권력과 제도의 본질을 질문하게 만드는 강력한 문학적 증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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