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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실학자 서유구: 임원경제지로 농업과 실용 지식의 혁명을 이끌다

by 지방소식 2025.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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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실학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는 조선 후기 농업과 실용 지식의 혁명을 이끈 인물입니다. 그의 대표작 '임원경제지'는 조선 최대의 종합백과사전으로, 농사에서 요리법까지 다양한 실용 지식을 담고 있습니다. 서유구의 삶과 업적을 통해 조선 후기 실학의 정신을 살펴봅니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사진
@kbs 역사저널 그날 인용

영상한국사 I 273 서유구가 집필한 조선의 백과사전, 임원경제지

 

조선의 역사에는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정약용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들 중에서도 조선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이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서유구(徐有榘)입니다.

 

 

서유구는 1764년에 태어나 1845년에 생을 마감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농정가(農政家)였습니다. 그의 본관은 대구(大丘)이며, 자는 준평(準平), 호는 풍석(楓石)이었습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었죠. 서유구는 명문가의 자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제학 서명응이었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서호수였습니다.

 

그의 생애는 조선의 격동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1790년(정조 14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대교(待敎)와 검열을 역임했습니다. 이후 순조 때에는 의주 부윤, 대사성, 강화부 유수, 형조·예조 판서, 대사헌 등 여러 고위 관직을 거쳤습니다. 1838년(헌종 4년)에는 다시 대사헌이 되었고, 이어서 상호군, 이조·병조 판서, 우참찬, 좌참찬, 대제학 등을 역임했습니다.

 

 

서유구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 편찬입니다. 이 책은 조선 최대의 종합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여 년에 걸쳐 완성된 이 방대한 저작은 내용과 분량 면에서 조선왕조실록에 버금간다고 평가받습니다. 임원경제지는 한국, 중국, 일본의 실용서적 853권을 참고하여 만들어졌으며, 16개 분야, 총 113권, 250만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임원경제지는 농사에서부터 요리, 건축, 의학, 천문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리지'는 농사백과, '예규지'는 전국시장백과, '정조지'는 음식·요리백과, '관휴지'는 식용식물백과, '예원지'는 화훼백과 등입니다. 이 외에도 과실·나무, 의류, 농업기상·천문, 목축·양봉·사냥·어로, 건축·도구·일용품, 정신수양·건강, 의학, 가정·향촌생활의례, 교양·기예, 휴식·오락·취미, 주거선택, 가정경제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임원경제지의 '정조지'(鼎俎志)는 음식과 요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주목받습니다. '정조'란 솥과 도마를 뜻하는 말로, 이 책에는 한국, 중국, 일본의 1,748가지 음식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떡만 해도 97종, 만두는 28가지나 됩니다. 이 책의 조리법대로 음식을 만들어보면 맛도 좋고 친환경적이라고 합니다.

 

서유구는 단순히 책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농업 발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1834년 호남 순찰사로 일하던 중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보고, 일본에서 고구마 종자를 구입해 각 고을에 나누어 주어 재배를 장려했습니다. 또한 '종저보'나 '경계책' 등의 농정에 대한 글을 써서 영농법(營農法)의 개혁을 여러 차례 주장했습니다.

 

 

서유구의 실용적인 태도는 그의 사상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그는 일하지 않고 쓸모없는 학문에만 매달리는 선비들을 비판했습니다. "곡식이나 축내고 세상에 보탬이 되지 않는 자 중에 글 쓰는 선비가 으뜸"이라고 말하며, 실용적인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당시 조선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기도 했습니다. 서유구는 사대부들을 "조상 중 한 명이라도 벼슬한 이가 있으면 눈으로는 고기 魚자와 노나라 魯자도 구분 못하면서 손으로는 쟁기나 보습을 잡지 않는다. 처자식이 굶주려 아우성쳐도 돌아보지도 않고 손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 성리(性理)를 이야기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조선을 가난한 나라로 만들었다고 보았죠.

 

 

서유구의 업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서유구 선생 기념관에서는 그의 '정조지'에 나오는 레시피대로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전주 10미 식자재를 활용한 전통음식을 체험할 수 있어, 서유구의 지식이 현대에도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서유구는 조선 후기 실학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인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실용적인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임원경제지'는 단순한 백과사전이 아니라, 당시 조선의 모든 실용 지식을 집대성한 거대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서유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는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농업, 요리, 건축,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집대성하여 후대에 남겼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문화의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서유구의 삶과 업적은 우리에게 지식의 실용성과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그가 추구했던 실학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서유구와 같은 실학자들의 정신을 되새기며, 우리도 지식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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